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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뇌 주교 서한집 하(下) (조선교구 역대 교구장 문서 제2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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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뇌 주교 서한집 하(下) (조선교구 역대 교구장 문서 제2집)

조선교구 역대 교구장 문서 제2집

Code30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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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
시메옹 프랑수아 베르뇌 주교
Publisher
한국교회사연구소
Page
743
Size
150*225
ISBN
9791185700144
date
2018-11-20
제본형태
양장
List Price
$22.04
Sales price
$19.84
Benefit
Discount : Earning 마일리지 :

베르뇌 주교 서한집 하(下) (조선교구 역대 교구장 문서 제2집)


조선 천주교회의 기틀을 마련한 시메옹 프랑수아 베르뇌 주교의 신앙과 열정이 담긴 역사적인 서한집​

 

《베르뇌 주교 서한집》은 제4대 조선 대목구장 베르뇌(Siméon François Berneux, 張敬一) 주교의 서한들을 한데 모아 원문-한글 대역판으로 엮은 책이다. 조선 천주교회가 자립할 수 있도록 체계를 잡아 준 베르뇌 주교는 조선 대목구장으로 11여 년에 걸쳐 사목하면서 신학교, 목판인쇄소 등을 건립했다. 이 서한집에는 베르뇌 주교가 조선 대목구장 직함을 사용하기 시작한 1855년부터 1866년 순교하기까지 11년간 남긴 서한들 가운데에서 공한(公翰) 성격을 지닌 130여 통을 수록하고 번역하였다.

 

박해 시대의 조선 대목구의 상황을 알 수 있는 자료집

 

병인박해 이전까지의 대목구장 가운데 베르뇌 주교는 가장 긴 11여 년간 조선에 있으면서, 최초로 성직자 회의를 개최하였으며, 목판 인쇄소를 설치하여 신자 교육을 위한 교리서와 기도서를 간행하였다. 또한 신자들의 성사생활 이외에도 교회 재정과 신심 및 복지를 위한 단체운영을 위해 체계를 잡아가는 데 노력하였다. 이 서한집에는 그러한 베르뇌 주교의 열정과 노력이 그대로 담겨 있다. 조선의 박해 시기 신앙공동체가 체계적으로 정비되어 가는 모습을 알 수 있는 가장 좋은 자료집이 될 것이다.

 

 

이 땅에 신앙을 뿌리내리게 했던 베르뇌 주교의 삶과 신앙!

 

베르뇌 주교의 서한에는 조선에 입국하여 병인년 순교하기까지 사목하였던 고난의 역정이 담겨 있다. 1844년부터 만주 대목구에서 활동하던 베르뇌 주교는 만주 대목구장을 위한 주교품 3일 전에 다시 조선 대목구장으로 임명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그는 신장 결석으로 어려운 상황인데도 순명으로 그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조선을 향해 떠나 마지막 선교지에서 그토록 원하던 순교에 이르기까지 선교사의 열정을 불태웠다. 베르뇌 주교의 신앙과 영성은 그가 남긴 서한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우리는 이 서한집을 통해 베르뇌 주교가 겪은 고난과 애환은 물론 조선 교회와 교우들은 사랑하는 마음, 언제나 하느님의 가르침에 충실하던 신앙심에 대해 자세히 알 수 있다. 이 서한집은 우리 신앙 후손들이 그와 함께하면서 그의 신앙 여정을 체험할 수 있는 좋은 자료가 될 것이다.

 

 

 

동료 성직자들과 신앙 선조들에 대한 생생한 증언

 

베르뇌 주교는 선교활동을 확대시킬 수 있도록 파리본부에 선교사의 증원을 수시로 요청하였다. 그 결과 1865년까지 9년 동안에 무려 10명의 선교사가 조선에 새로 파견될 수 있었다. 그동안 어려움이 적지 않았으나, 2명의 주교와 10명의 선교사들이 벌인 끈질긴 활동의 결과 교세는 지역적으로도 확대되었다.

 

베르뇌 주교의 서한은 당시에 함께 사목했던 다블뤼 주교, 메스트르 신부, 푸르티에 신부, 프티니콜라 신부, 최양업 신부 등 동료 사목자들의 활동 모습과 박해를 받으며 고난에 찬 신앙 여정을 걸었던 신앙 선조들의 모습을 생생하게 전해 주고 있다. 또한 조선 역사와 언어, 풍습과 문화를 상세하게 수록하고 있어서 잘 알려지지 않았던 일반 민중들의 삶의 모습도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조선 후기 교회사 연구뿐만 아니라 한국 근대사 연구에도 소중한 자료가 될 것이다.​

 

 

 

책 속으로

 

​폭설이 쏟아졌고, 그렇지 않아도 몸이 상당히 좋지 않은 상태에서 나는 산길 3리외[약 12km]를 겨우 걸었습니다. 그날 밤 나는 포졸들이 내가 묵고 있는 집에서 1리외[약 4km] 거리에 와 있고 모든 출구가 막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나는 서울로 가는 계획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고 어디서도 피신처를 구하지 못한 채 여드레 밤을 산속에서 헤맸습니다. 다섯 마을에 포졸들이 들이닥쳐 신자들을 대거 체포하였고 가옥들을 약탈하며 불을 질렀습니다. 도처에서 이와 같은 상황이 벌어질 거라 예상되자 남자들과 젊은 여자들은 모두 자기의 집을 버리고 피신을 갔고 빈집들은 포교들과 비신자들이 탈취했습니다. 나는 야음을 틈타 이동하던 중에 길에서 여러 신자 가족과 마주쳤습니다. 한밤중에 눈 덮인 산속을 어린 아이를 업거나 손을 잡고 억지로 걷게 하며 피신하는 그들의 모습을 보니 가슴이 미어졌습니다.

 

- 74번 서한(1860년 10월 17일, 조선), 69~71쪽

 

선교사에게, 특히 지방에서 거주하는 선교사로서는 트라피스트회의 저녁식사가 작은 잔칫상으로 여겨지리라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습관이라는 것과 무엇보다 소명의 은총은 다른 이들에게는 몹시 괴롭게 보이는 것도 쉽게 참을 수 있게 만들어 줍니다. 게다가 우리는 조선에서 곤란을 타개하는 방책을 가지고 있는데, 당신은 짐작도 못할 것입니다. 선교사는 매일 아침 3, 4리외[약 12, 16km] 길을 걷고 난 뒤에 아침을 먹게 되고, 그러고 나서 교리를 가르치고 고해성사를 주느라 꼬박 여덟 시간 내지 아홉 시간을 보낸다고 말한 것을 기억합니까? 아시겠지요, 이러한 일과가 바로 밥과 소금에 절인 생선, 고사리나물을 상류층의 군수라도 맛있게 즐길 진미로 만들어 주는 훌륭한 요리사 역할을 합니다.

우리의 침대로 쓰이는 이 딱딱한 돗자리는 당신에게 연민을 유발하겠지만, 우리는 이것에도 대처하는 비결을 가지고 있습니다. 매일 새벽 3시에 기상해서 저녁 10시까지 이 산 저 산을 오르고 쉴 틈 없이 성무를 집행하느라 꼬박 하루를 보내고 나면, 달콤한 잠에 빠지고 매트리스 따위는 전혀 생각나지도 않습니다.

 

- 84번 서한(1861년 8월 30일, 조선), 175~177쪽

 

우리의 유일한 현지인 사제인 최[양업] 토마스 신부는 굳건한 신심과 영혼의 구원에 대한 불타는 열의, 그리고 대단히 값진 그의 훌륭한 분별력으로 우리에게 너무도 소중한 존재였습니다. 그런데 그 최 신부가 구원의 열매가 풍성했던 성무집행 이후 제게 자신의 성과를 보고하러 수도로 오던 중 지난 6월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 선한 신부가 위험에 처해 있다는 기별을 제일 먼저 받은 푸르티에 신부가 일찍 도착하여 최 신부에게 마지막 성사를 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최 신부는 말을 하지 못했습니다. 단 두 마디만이 그의 생기 없는 입술에서 새어 나왔는데, 그것은 예수님과 성모 마리아의 거룩한 이름이었습니다.

 

- 85번 서한(1861년 9월 4일, 조선), 195쪽

 

조선의 가옥은 어떨까요? 먼저 수도의 가옥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 가옥은 기와를 얹은 것이 일반적이며 가옥에는 안채가 하나 있습니다. 그곳에 여인들이 머무는데, 좌우로 벽이나 마루를 사이에 두고 두 칸 혹은 여러 칸의 방들이 나있습니다. 외간 남자들은 그 규방에 들어갈 수 없어서 심지어 먼 친척에게도 금지되어 있습니다. 엄격하게 지켜지는 이 지혜로운 관습은 문란함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것입니다. 안채 앞쪽에 또 한 채의 건물이 있는데, 그 건물은 규방을 외부와 완전히 차단시키면서 응접실로 사용됩니다. 집주인이 평소에 머물고 손님들을 맞이하는 곳이 이곳입니다. 이 응접실 옆으로, 하인들이 쓰는 방들이 별도로 담벼락 쪽에 붙어 있습니다. 가옥의 모든 방들은 벽돌이나 마루판 대신에 종이, 아니 기름을 먹인 마분지를 바른 방바닥 밑으로 퍼지는 난방장치를 통해서 데워집니다. 이보다 더 청결한 난방방식은 생각할 수 없을 겁니다. 아침마다 천을 물에 살짝 적셔 정성껏 방바닥을 닦기 때문에 먼지가 그 기름 바른 종이에 붙어 있을 리 없습니다.

- 103번 서한(1863년 2월 20일, 조선), 357~359쪽

 

이 작은 방이 제게는 사실상 궁궐 전체인 셈입니다. 이 방안에서 저는, 제가 신부님께 작별을 고하고 떠나던 날 우리 교우들을 위해 옷을 보내겠다고 제게 제의한 쿠트랭 동네 재단사처럼, 책상다리를 하고 바닥에 앉아서 매일 아침 궤를 제대 삼아 미사를 봉헌합니다. 알론느(Allonnes)의 꼴라(Colas) 씨처럼 방 안에서 일도 하고 매일 두 끼 식사하며, 회장들을 맞아들여 그들을 통해 교우들의 소식을 듣습니다. 왜냐하면 4명의 회장과 제게 필요한 몇몇 남자들 외에는 교우들 중 아무도 저의 집에 오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제가 사는 집을 모릅니다. 아니, 몰라야 합니다. 혹시 알아도 다른 이들에게 가르쳐 주지 말아야 하고, 이 규칙을 어기는 사람은 엄벌을 받습니다. 이토록 조심을 하는데도 결국 저의 집은 항상 사람들의 의심을 샀습니다.

- 103번 서한(1863년 2월 20일, 조선), 369쪽

 

상당수의 성영회 아이들을 양육하고 있는데, 아이들을 전부 교우 가정에 위탁했습니다. 박해 상태에 있는 우리의 처지에서는 그 아이들을 고아원에 한데 모아 놓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 103번 서한(1863년 2월 20일, 조선), 38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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