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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하니까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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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하니까사람이다

쓰디쓴 실패를 경험한 모든 이들의 새 출발을 위하여

Code12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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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
최강
Publisher
가톨릭출판사
Date
2011-07-01
Page/Size
140*205/반양장/232면
List Price
$6.47
Sales price
$5.83
Benefit
Discount : Earning 마일리지 :
Product weight
300.00g

실패하니까사람이다


실패로 좌절한 사람들에게 전하는 위로와 희망의 메시지

 

《나는 넘버쓰리가 두렵다》(2007),《밴댕이 신부의 새벽 고백》(2008)이라는 책들로 유쾌한 글쓰기로 정평이 난 최강(스테파노, 44, 멕시코 캄페체 교구 싼 프란치스코 본당 사제) 신부가, 이번에는 자신의 뼈아픈 ‘실패’의 경험을 고백하며 ‘실수나 실패에 좌절하여 고개를 떨군 사람들에게’ 위로와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는 책《실패하니까 사람이다》를 가톨릭출판사(사장 홍성학 신부)에서 펴냈다.

교회법으로는 세계 최고로 인정받는 교황청립 로마 라테란 대학교에서 최단기간에 박사 학위를 받은, 전도유망한 한국 외방 선교회 소속 선교사 최강 신부. 그가 자신의 첫 선교지 중국에서 2년 정도 머물면서 처절한 실패를 경험한 것이다. 깊이 뿌리내리고 잘 살아 보려고 무척이나 애를 썼던 그곳에서의 삶이 처절한 실패였음을 인정한 그는 덜덜덜 떨면서 중국을 탈출했다.

인생을 살면서 누구나 실수를 하고 실패를 한다. 실패의 경험은, 많은 경우 그 사람을 위축시키고 그의 내면을 압박한다. 이제 지구 저 반대편에서 선교사로서의 새로운 삶을 살고 있는 저자는 우리에게 자신의 실수와 실패를 고백하며, 실수와 실패를 새로운 눈으로 다시 보기를 권한다. 동시에 그로 인해 좌절하는 사람들에게 따스한 위로와 희망의 메시지를 전한다.

 

도착하던 날과 마찬가지로 홀로 쓸쓸히 중국을 떠나오던 날, 새벽 기차를 타기 위해 기차역으로 향하는 택시 안에서, 서서히 밝아 오는 태양이 비추어 오던, 바로 그 방향을 향해 쉬지 않고 달리던 기차 안에서, 저는 다짐하고 또 다짐했었습니다. 다시는 기억에조차 떠올리지 않겠노라고. 그날 북경의 날씨가 그렇게 추웠는지 잘 기억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저는 덜덜덜 떨고 있었습니다.

영광스럽고 편안하고 행복한 순간에만 공부를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아니, 오히려 불편하고 고통스러웠던 체험들과 쓰디쓴 실패의 경험들은 그 자체로 우리에게 많은 깨달음을 줍니다. 비록 그 순간에는 너무 힘들어서 얼른 그 멍에를 벗어 버리는 일에만 온 신경을 썼다 할지라도, 바로 그런 체험들을 거치면서 우리는 무겁고 힘든 인생의 무게를 지고 걸어가는 다른 동료들의 새로운 면모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 ‘머리말’ 중에서

 

실패와 외로움의 상관관, 그리고 일상에서 ‘발’하는 외로움

 

이 책에는 ‘외로움’에 대한 이야기가 두드러진다. 누구나 성공을 바란다. 그리고 성공 가도를 달릴 때는 ‘외로움’이 표면에 잘 드러나지 않는다. 하지만 실패의 기운은 인간 실존의 깊은 내면에 자리 잡은 ‘외로움’이라는 감정을 자극하여 두드러지게 한다. 어느 시인의 말처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외롭지 않은 사람은 없다. 외로움을 외면하는 사람이 진정한 삶을 산다고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내면 깊이 숨어 있던 외로움은 실패나 좌절의 감정과 함께 일상에서 ‘발현’한다. 저자는 맛있게 끓고 있는 김치찌개 옆의 빈 밥통에서, 옷장 속에 차려진 제대와 그 앞에 걸려 있는 선교 십자가에서, 식기들 위에 진을 치고 있던 바퀴벌레들 중 한 마리를 생포해 꾹 눌러 버린 후 눈에 들어온 베개 두 개에서 선명한 ‘외로움’의 그림자를 보았다. 그는 외로움이라는 감정을 사진으로 찍는다면 바로 그런 형상들일 거라고 한다. 우리 각자는 살아가면서 또 다른 모습의 외로움의 형상과 마주치게 될 것이다. 저자는 이럴 때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있는지 지혜로운 스승처럼 자신이 체험한 이야기로 말해 준다.

 

땀을 식힐 틈도 없이 냄비에 김치를 길쭉하게 찢어 넣고, 대파와 마늘도 ‘송송송’ 썰어 넣고, 껍질까지 붙어 있는 돼지고기도 큼직큼직하게 썰어 넣은 김치찌개가 팔팔 끓기까지 기다리는 시간은 영원처럼 길게 느껴졌습니다. …… 천년 같은 기다림 끝에 ‘최강표 김치찌개’가 마침내 완성됐고 저는 밥을 담기 위해 주걱을 들고 밥통을 열었습니다.

아뿔싸! 밥통에 밥이 없습니다! 쌀통에 쌀도 없습니다! 쌀이 떨어진 지가 벌써 며칠이 지났을 텐데 도대체 이놈의 주부가 살림을 어떻게 하기에 쌀통 채우는 일도 안 하고 며칠을 보냈을꼬!

보글보글 끓고 있는 김치찌개 바로 옆에 놓여 있는 빈 밥통을 물끄러미 쳐다보고 서 있을 때 일어나는 감정이 의외였습니다. 시장기는 다 어디로 도망가고 갑자기 파도처럼 제 가슴을 적시는 감정은 외로움이었습니다. 그동안 외로움이니, 고독이니 하는 감정을 주제로 글도 몇 편 써 봤고, 강론도 몇 차례 해 봤지만 그 빈 밥통 앞에 서서 느낀 외로움은 굉장히 낯선 것이었습니다.

어쩌면 외로움이라는 감정을 사진 찍듯 정확히 찍어 놓은 광경 앞에서 저는 벌벌 떨고 있었습니다. ‘모든 재료가 다 들어가서 맛있게 끓고 있는 김치찌개 옆의 빈 밥통! 이게 외로움이구나! 일견 다 있어서 풍요로운 듯 보이지만 제일 중요한 한 가지가 없어서 모든 의미가 그 빈 공간 속으로 빨려 들어가듯 사라져 버리는 것, 그래서 내 존재의 의미마저 희미해져 가는 것, 이것이 외로움이었구나!……

주식이 빠진 밥상! 주님이 멀어진 선교지에서의 삶! 그것이 저의 외로움의 시작이었습니다. 밥 없이 반찬만으로 포만감을 느낄 수 없듯이 주님 없이 활동만 있는 선교사의 삶이 어찌 풍요로울 수 있을까요. 하느님과의 대화 없이 어찌 친구들과의 수다만으로 구도자의 기도가 완성될 수 있을까요.

- ‘김치찌개 옆의 빈 밥통’ 중에서

 

 

새로운 출발을 하는 이들에게 새로운 의미와 용기를 드립니다!

 

열심히 살았지만 이 길은 내 길이 아니라고 여겨지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때 되돌아가는 것은 처음 시작했을 때보다 더 큰 용기가 필요하다. 때론 평생 함께하자고 한 약속이 무색하게 변질되어 버린 경우도 있다. 길은 지금 가고 있는 이 길은 하나뿐인 외길인가? 회의하며 때로는 다른 길로 접어들기도 하고, 때로는 출발했던 지점으로 되돌아가서 새롭게 출발하기도 한다. 사람은 그럴 수 있고, 또 그러니까 사람인지도 모른다. 다른 사람의 눈에는 일종의 배신으로 보일지라도 자신에게는 그것이 보다 나은 선택이었을 것이다. 누구든지 그것이 보다 나은 선택이라 여겨지기에 다른 선택을 하게 된다. 그가 끝내 견딜 수 없었던 첫 선교지, 그의 첫사랑 중국을 떠나 현재의 멕시코 캄페체 교구 산 프란치스코 본당에 있는 것처럼…….

 

그러던 어느 여름날, 어머니께서 옆집의 공주를 불러 주시고는 커다란 야외 욕조에 둘을 벌거벗긴 채로 집어넣어 주셨습니다. ‘맘마 미아!’ 야외 욕조에 물을 채워 달라고 그토록 애원하며 졸라 대도 물을 아껴 써야 한다며 가뭄에 콩 나듯 어쩌다 한 번 물을 채워 주시던 ‘엄마’가 그날은 제가 조르지도 않았는데 알아서 물을 채우시고 그 속에 풍덩 넣어 주신 것입니다. 세상에서 제일 예쁜 나의 공주와 함께! 그것도 벌거벗은 채로 킥킥! 세상이 다 제 것 같았습니다. 수영장처럼 크게 느껴지는 야외 욕조에서 물장구를 치고 놀 수 있다는 것! 그것도 공주랑 함께! ……

공주와 함께 물장구를 치며 한참을 정신없이 놀던 제게 갑자기 불길한 예감이 스쳐 지나갔습니다. 어머니의 기운이 느껴지지가 않았지요.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어 부리나케 욕조를 빠져나와 온 집 안을 샅샅이 뒤졌는데도 어머니는 계시지 않았습니다. ‘치사한 엄마, 공주까지 불러다가 나를 물놀이에 정신없게 만들어 놓고 혼자 나가시다니…….’ 다른 생각을 더 할 겨를이 없었습니다. 어머니는 틀림없이 저를 떼어 놓고 시장에 가시려고 기차를 타러 역에 가셨을 것입니다.

저는 물놀이를 하던 그 원초적인 자연의 모습 그대로 세상이 떠나가라 울면서 십 분쯤 걸리는 기차역을 향해 뛰었습니다. 저쪽에서 기차가 플랫폼을 향해 다가올수록 제 울음소리는 기차의 화통 소리를 능가할 정도로 더욱 커졌습니다. 다른 사람은 다 듣지 못해도 어머니들은 당신 아이의 울음소리를 기가 막히게 듣습니다.

그날, 어머니는 결국 기차에 오르지 못하셨고, 기차 안의 사람들이 벌거벗은 채 ‘앙앙’ 울고 있는 저를 보고 웃어 댔습니다. 지금의 제 나이보다도 훨씬 젊으셨던 사십 년 전의 젊은 어머니는 너무 창피한 나머지 얼굴이 붉어지면서 저의 등짝을 때렸습니다. 등짝이 엄마의 얼굴처럼 붉게 변하도록 맞아도 저는 엄마랑 함께 있는 것이 좋았습니다.

어린 시절의 저는 어머니가 이 세상의 전부였습니다. 어머니와 함께 있으면 세상을 다 얻은 듯 기고만장했지만 잠깐이라도 어머니와 떨어져 지내는 시간들은 저에게는 죽음이나 다름없었지요. 저는 어머니와 ‘함께 있는’ 생명의 시간을 위하여 그렇게 좋아하던 공주까지 포기했어야만 했습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그날 공주가 느꼈을 황당함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치사한 녀석, 그렇게 나 좋다고 따라다닐 때는 언제고 자기 엄마가 눈에 안 뵈니까 나를 그렇게 헌신짝처럼 버려? 넌 끝났어!!!”. ……

공주에게는 심각한 배신행위가 되었을 그때의 그 결단과 행동을 되살려 이제 저는 다시 한 번 세상의 모든 좋다는 것들을 다 내려놓고 더 좋고, 더 사랑스러운 주님과 함께하고 자 멀리 떠나갑니다.

- ‘첫사랑을 배신하다’ 중에서

 

 

 

 

책 속으로

 

문이 잠겼습니다. 열쇠는 집 안에 있습니다. 중국 대부분의 현관문들은 열쇠가 없으면 밖에서는 열 수가 없게 되어 있습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중국에서 생활하는 많은 외국인들이 한 번쯤은 겪는 홍역과도 같은 실수랍니다. 여기까지는 일반 사람들이 하는 실수와 별 다를 바가 없지요. 하지만 제 경우는, 일 년에 한 번 꼴로 벌어지는 어이없는 실수의 수준을 가볍게 초월했습니다.

현관문이 잠겨서 오도 가도 못하게 된 제가 입고 있던 것은 얇은 반팔 티셔츠와 팬티가 전부였습니다. 제가 옷을 갈아입던 와중에 일을 미루지 않고 너무나도 즉각적으로 행한 결과였습니다. 날씨가 많이 풀렸다고는 하지만 이 복장으로 밖에 나갔다가는 금방 동태가 될 것이고, 중국인들이 타인의 옷차림에 비교적 관대하다고는 하지만 그들도 잠옷을 입고 밖으로 나오는 정도지 속옷을 입고 거리를 활보하지는 않습니다. 갑자기 하늘이 깜깜해졌습니다. ‘하늘이 진짜로 무너지는구나!’ ……

살다 보면 하늘이 무너진 것과 같은 느낌을 받게 되는 순간이 누구에게나 오게 마련입니다. 그 원인이 누구에게서 비롯되든 누구나 한 번쯤은 참을 수 없을 만한 고통과 절망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릴 때가 있습니다.

바로 그때, 우리 신앙인들은 하느님께 더욱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며 의지하게 되는데, 그런 의미에서 절망은 오히려 희망의 때이기도 합니다. 가정과 주변의 모든 일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을 때는 하느님과 생명에 대한 감사함과 절실함이 없다가도, 일단 내게 하늘이 무너진 듯한 절망적인 순간이 닥쳐오면 원망이든, 탄원이든 하느님의 이름을 다시 부르기 시작하니까요.

그런 간사함도 괜찮습니다. 하느님은 언제든 당신의 이름을 부르며 살려 달라고 간청하는 사람들의 희망이요, 구원이시니까요. 하지만 똑똑히 명심해 두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무엇이 변함없이 영원히 우리를 살릴 수 있는 것인지를.

- ‘하늘이 진짜로 무너지는구나’ 중에서

 

 

‘또 한 형제가 떠났구나!’ 형제 사제가 본회를 떠나는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매번 이런 소식을 접할 때마다 맨처음 떠오르는 감정은 안타까움입니다. 그리고 ‘이혼’이라는 단어가 머릿속에 떠오릅니다. 그러고는 영락없이 이혼한 부부 중 어느 한쪽 당사자가 된 느낌을 받습니다. ‘함께 살 때 좀 더 잘해 줄 것을…….

죽을 때까지 아니, 죽음을 넘어서까지도 한 사람 혹은 한 공동체와 한 몸이 되어 살아가겠다는 약속은 자신의 전 생애와 전 존재를 걸고 발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실로 인간이 할 수 있는 약속 중에 이보다 더 깊은 의미를 가질 수 있는 약속은 없다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인간은 역시 영원을 이야기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존재들일까요? 우리 주변에는 꽤 많은 ‘한 몸’들이 다시 분리되고 있는 것을 목격하게 됩니다. 부부 관계도 깨지고 공동체도 갈라집니다.

최근 들어 저는 이렇게 갈라지는 관계들을 새롭게 바라보는 시선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또한 한때 영원을 약속했으나 이생조차 함께하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해 보다 깊이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말은 결코 영원한 계약이라는 의미를 의도적으로 축소시켜서 이혼이나 퇴회를 정당화시키려는 뜻이 아닙니다. 이 말은 단지 우리 인간은 모두 한계를 지닌 존재들이며 우리가 모두 그 한계의 칼날 위에 서서 비틀거릴 수 있는 존재임을 인정한다는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혼이나 퇴회의 경험을 가진 사람들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고 그들에 대해서는 측은지심을 가지게 되었다는 고백일 뿐입니다. ……

부부 생활을 지탱해 주는 것은 넓고 화려한 아파트가 아니라, 부부 사이에서 피어나는 부부애와 상호 신뢰입니다. 사랑과 신뢰가 없으면 넓고 화려한 아파트는 더 이상 둘이 함께 살 수 있는 공간으로서의 기능을 할 수 없게 됩니다. 공동체 생활 역시 그것을 지탱해 주는 것은 형제 회원들 간에 피어나는 형제애와 신의입니다. 형제애와 신의에 상처를 입게 되면 자신이 머무르고 있는 공동체와 영원을 함께한다는 것에 대해서도 의심을 하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

선교지에서의 삶이 외부적인 조건의 도전뿐 아니라 내부적인 조화의 문제까지도 함께 넘어가야 하는 피곤함으로 느껴지는 요즘입니다. 제 스스로가 이런 체험을 통해 공동체 생활에 대한 새로운 이해의 지평을 넓혀 가다 보니, 새삼 한 가정을 이루어 살아가는 이 세상의 모든 부부가 너무나 대단해 보입니다. 새삼 한생을 오롯이 투신, 묵묵히 구도의 길을 걸어가는 선배 구도자들이 너무나 존경스럽게 느껴집니다. 그들이 모두 저의 스승입니다. 한편 영원히 한 몸이 되어 살아갈 것을 약속했으나 중간에 다시 갈라지는 사람들은 더욱 안타까운 마음으로 기도하게 됩니다. 그들은 우리의 판단보다는 우리의 위로가 필요한 사람들입니다.

- ‘장미꽃 향기’ 중에서

 

 

스승 예수님!

고백합니다. 그동안 너무 외로웠습니다. 함께 미사를 드릴 신자도 없는 이곳에 살면서 ‘선교 사제로 평생을 보내겠다’고 당신께 드린 약속을 한 수만 물러 달라고 떼를 쓰고 싶은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혼자 뜨는 달이 그렇게 외로워 보여서 홀로 남겨 두지 못하고 밤새 바라보며 창문 옆에 앉아 있기도 했습니다. 태양도, 바람도 외로웠습니다. 행여 일이 생기거나 친구가 생기면 좀 덜할까 싶어서 일에 빠져 보기도 하고, 친구를 찾아보기도 했습니다. 그럴수록 미사를 드리는 시간은 점점 힘든 시간으로 변해 갔습니다. 정성은 눈곱만큼도 없이 그냥 빨리 ‘해치우는’ 식으로 바쳤습니다. 기도는 점점 저만의 독백이 되어 가고 있었습니다. 당신의 음성을 듣기 위해 홀로 기다려야 하는 시간조차 견디기 힘들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빈 밥통을 보여 주신 바로 그날, 한 선배 사제의 낯선 고백을 들은 그날, 스승님이 제게 빈 밥통과 낮은 음성으로 찾아오셨습니다. 저는 깜짝 놀랐고, 지금도 그 놀라움이 남아 있습니다. 당신은 제 외로움의 시작과 끝을 한 장의 사진처럼 선명하게 보여 주셨습니다. 제 외로움은 곧 당신의 부재不在입니다. 당신의 부재가 제 외로움의 시작이고 제 생명의 끝입니다. ……

- ‘김치찌개 옆의 빈 밥통’ 중에서

 

 

혼자 지내는 일을 제법 잘 즐기는 편이면서도 혼자 하는 것이 너무 어렵고 싫은 일이 딱 한 가지 있습니다. 혼자 미사 드리는 일입니다. “주님의 평화가 항상 여러분과 함께.” 하면서 세상을 향해 양팔을 벌려 주님의 평화를 나누려 해도 아무런 응답이 없을 때, 그 짧은 고요가 제게는 아직 영원처럼 길게만 느껴집니다. 그럴 때면 무슨 신비의 공간인 양 옷장 속에 차려진 제대와 그 앞에 걸려 있는 선교 십자가를 바라보면서 “제가 지금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거지요?” 하고 하느님께 여쭙고는 한참을 멍청하게 앉아 있곤 합니다. ……

제게는 아직 그런 본당도, 한두 분의 신자도 없지만 저 역시 제게 주어진 이 상황을 건강하고 성스럽게 맞이하고 싶습니다. 작은 옷장 속의 제대가 저의 본당이고, 하느님께 기도를 바치면서 저와 항상 함께 길을 걸어가는 저의 모든 친구가 제 본당 신자들이니 사실 무엇이 더 필요할까요?

- ‘옷장 속 성당’ 중에서

 

 

‘따뜻한 물 한 모금 마시면 다시 잘 수 있을까?’ 어슬렁어슬렁 부엌으로 걸어와서 불을 켰을 때 저는 자지러지듯 놀랄 수밖에 없었습니다. 지난밤 설거지를 마치고 식기가 잘 마르도록 싱크대 옆에 엎어 놓은 식기들 위에서 손톱 크기의 바퀴벌레 서너 마리가 경주를 벌이고 있었습니다. 바로 옆에 따뜻한 보온밥통이 있어서 모두 모여든 모양이었습니다. 어떤 놈은 아예 제 숟가락이 마치 제 집인 양 폭 파인 곳에 배를 깔고 움직일 생각도 없이 명상에 잠겨 있었습니다. ……

서둘러 주방용 티슈를 몇 칸 끊어서 생포 작전에 나섰습니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저의 등장에 저만큼이나 놀라서 허둥지둥 달아나는 그놈들 중에 겨우 한 마리만을 잡을 수 있었습니다. 주방용 티슈 속에서 바동거리는 그놈을 꾹 눌러 쓰레기통에 버리면서 혼잣말로 내뱉었습니다.

“미안하지만 나도 어쩔 수가 없다.”

그 새벽에 물을 끓여서 식기들을 한참 동안 담가 놓았습니다. 숟가락을 꺼내서 세제를 듬뿍 발라 빡빡 소리 나게 닦고 있을 때 그동안 이 숟가락이 제 입속을 들락거렸다는 사실을 생각하니 기분이 몹시 불쾌해졌습니다. 그렇게 약간 신경질이 난 채 제가 다시 방으로 돌아왔을 때 갑자기 바퀴벌레만큼이나 제 신경을 다시 확 곤두세우게 하는 것이 시야에 들어왔습니다.

베개 두 개! 시장에서 구입한 침구 세트에 들어 있던 것으로, 그동안 별 생각 없이 하나는 머리에 베고 다른 하나는 껴안거나 다리를 올리는 용도로 써 왔습니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그 새벽에 제 눈에 들어온 베개 두 개는 제 신경에 몹시 거슬렸습니다. 화가 났다는 게, 아니, 갑자기 너무 외로워졌다는 것이 좀 더 솔직한 표현일 것 같습니다. …… 그날 새벽 베개 하나를 옷장 속에 내동댕이치듯 처박아 두면서 혼잣말로 내뱉었습니다.

“미안하지만 나도 어쩔 수가 없다.”

……

미사를 마쳤을 때 어느새 여명은 창문까지 닿아 있었고 저는 옷장 속에 처박아 놓은 베개를 다시 꺼내어 가만히 침대에 올려놓았습니다. 그제야 제가 품고 자던 그것은 저만을 위한 것이 아님을 생각해 냈습니다. 그것은 ‘임의 베개’였습니다. 당신을 그리워하는 한 구도자와 함께 매일 밤을 보내시는 나의 임을 위한 베개! 저는 다시 제 곁을 지키며 함께 살아 주시는 하느님을 생생하게 느끼며 이곳에서의 삶을 봉헌합니다. 지금 제 침대에는 다시 베개 두 개가 나란히 놓여 있습니다. 저는 행복한 구도자입니다.

- ‘베개 두 개’ 중에서

 

 

여장을 풀고 샤워를 하는데 물음 하나가 떠올랐습니다. ‘도대체 오늘은 무엇 때문에 이토록 하루 종일 쫓기듯 살아야 했지?’

다른 때는 더 긴 시간 비행기가 지연됐어도 아무 일 없듯 편안하게 기다릴 수 있었는데, 오늘 따라 비행기 지연 방송을 듣자마자 그토록 짜증이 났던 이유가 뭘까요? 오늘 따라 비행기 안은 왜 그리도 덥게만 느껴졌을까요? 항상 승객이 다 차야 출발을 하는 공항버스라는 것을 몰랐던 것도 아닌데 왜 정해진 시간에 떠나지 않느냐며 화를 냈을까요? 더 오래 기다린 사람이 옆에 있든지 말든지 빈 택시가 눈에 띄는 대로 타고 가 버리는 중국 친구들이 오늘 따라 왜 그리 밉게 느껴졌을까요? 무거운 배낭을 짊어지고 집까지 걸어오는 동안 이곳에서 사는 것이 행복하지가 않다는 말이 왜 그리도 혀끝을 맴돌았을까요? 도대체 오늘 하루는 왜 이리 조급하게 살아야 했을까요?

‘고등어! 안동 간고등어! 바로 네 놈이구나! 아니, 아니! 안동 간고등어가 들어앉은 내 마음! 바로 네 놈 탓이구나!’ 이것 때문에 오늘 하루 내내 자신을 급히 내몰고 있었습니다. 안동 간고등어를 소유한 제 마음이 하루 종일 이 세상을 급하게 몰아세우고 있었습니다. 샤워를 하다 말고 한숨이 절로 터져 나왔습니다. 참 이럴 때는 어이가 없습니다. 고등어 몇 손, 그게 뭐라고 오늘 하루를 온전히 그 놈에게 내어 주고 말았는가 말입니다. ……

버릴 줄을 몰라서 그런 것입니다. 여전히 손에 쥔 것이 많은 탓일 것입니다. 여전히 마음을 꽉 채우고 있는 욕심 탓일 것입니다. 정작 상하는 것은 고등어일 뿐인데 그 놈의 고등어가 뭐라고 내 마음까지 상해서 악취를 풍깁니다. 그깟 고등어가 뭐라고 움켜쥐고 놓지 않으려는 탓에 우리는 자신을 잃어버리고, 친구들도 잃어버리고, 오늘 하루도 잃어버리고, 인생도 잃어버리고, 세상도 다 잃어버립니다. 잠시 눈을 감고, 상한 고등어 한 마리를 끝까지 손에서 놓지 않고 냄새를 풍기면서 구원을 위해 기도하는 당신의 모습을 바라보십시오.

‘하느님 앞에 홀로 서려 하는 자는 아무것도 손에 쥘 수가 없나니…….’

- ‘안동 간고등어’ 중에서

 

 

얼굴에는 아무런 표정도 남아 있지 않았지만 젖을 빠는 아이를 바라보는 그 엄마의 눈빛에는 아슬아슬한 미소가 비쳤습니다. 그 슬쩍 비쳐진 거지 엄마의 미소! 제 눈에는 그것이 어느 성자의 미소처럼 편안하게 느껴졌습니다. 그 짧은 미소는 제게 많은 것을 말해 주었습니다.

저는 슬그머니 야수들의 전쟁터를 빠져나와서 그 거지 모자에게로 다가갔습니다. 좀 더 가까이에서 그 아기의 얼굴을 보고 싶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아기는 온통 전쟁 중인 세상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젖을 문 채 엄마의 품 안에서 온전한 평화를 누리고 있었습니다. ……

중요한 것은 어떤 역할을 하면서 살아가든지 입가에 미소하나 머금을 수 있는 행복이 우리에게서 느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하더라도 살며시 미소 한 번 지을 수 있는 행복을 느낄 수 없다면 그것은 인생을 낭비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미소 한 번 지을 수 있는 행복은 우리의 외부적인 역할 수행에서 찾아 들어오기보다는 우리의 내부 저 깊숙한 존재 자체에서 샘처럼 솟아나는 것입니다. 물론 성직자로서, 회사원으로서, 군인으로서 혹은 역술가로서의 외적인 역할 수행도 행복과 무관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잘 생각해 보면 ‘나’의 행복은 자신이 맡고 있는 주된 역할과는 전혀 연관이 없는, 다른 어떤 곳으로부터도 얼마든지 느낄 수 있습니다. 우리가 ‘행복하다’고 했을 때 그 상태의 문제는 재산이나 사회적 지위 등과 같은 외부적인 조건이 아니라 보다 본질적인 ‘존재의 상태’와 직접 관련되기 때문입니다.

- ‘거지 엄마의 미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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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자 피해보상 '상품의 불량에 의한 반품, 교환, A/S, 환불, 품질보증 및 피해보상 등에 관한 사항은 소비자분쟁해결기준 (공정거래위원회 고시)에 준하여 처리됨 
상품 품절 공급사 재고 사정에 의해 품절/지연될 수 있으며, 품절 시 관련 사항에 대해서는 별도 안내드리겠습니다.
환불지연에 따른 배상 대금 환불 및 환불 지연에 따른 배상금 지급 조건, 절차 등은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 보호에 관한 법률에 따라 처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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