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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다른 형태, 죽음

kysytg1618 (IP: 119.193.18.***) 2024.03.28 15:43:32 조회수 50
발타사르, 죽음의 신비를 묵상하다 판매금액 13,000원

한 달 전에 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 언제든 생각날 때 목소리 듣고 보고 싶을 때 찾아뵈올 수 있는 아버지였다. 아버지는 어느 날 아침에 숨을 거두셨다. 어릴 적 가장 무서운 꿈은 부모님이 돌아가시는 꿈이었다. 온몸이 옥죄여오고 소리를 질러도 소리가 나오지 않는, 새까만 소용돌이 속으로 끝없이 빨려 들어가는 꿈은 늘 죽음과 관련이 있었다. 무서운 꿈을 꾸고 나서는 부모님이 무사한지 안위를 확인했다. 그리고 안심했다. 

 

어른이 되어 먹고살기가 바쁜 뒤로는 죽음에 대한 꿈을 꾸는 횟수도 점점 적어지기 시작했다. 가끔씩 누가 죽는 꿈을 꿨지만 개꿈이며 부모님은 안전하실 거라 믿었다. 부모님이나 내 죽음은 먼 훗날의 일 또는 없을 일로 여기며 그저 정신없이 일하며 살았다. 

 

어느 날 갑자기, 정신 차려보니  나도 늙었고 부모님은 더욱더 늙어갔다. 부모님의 오늘은 어제와는 사뭇 다르게 빠른 속도로 늙어갔다. 죽음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일년 전, 부활절을 앞두고 아버지는 폐렴에 걸렸고 건강이 급속도로 나빠지셨다. 일년동안 건강을 회복하기도 또다른 병을 앓기를 반복했다. 회복은 잠시이고 투병의 기간이 점점 길어졌고 아버지는 결국 돌아가셨다.

 

인간은 이 세상에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음으로 각인된 존재입니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인간은 자신에게 주어진 짧은 인생에 '영원'을 각인하려는 염원을 지니고 있습니다.

-발타사르, 죽음의 신비를 묵상하다. 

 

 아버지의 투병과 약해지심을 보며, 죽음은 삶과 얼마나 가깝게 있는지를 실감했다. 

 

죽음은 모든 노력을 수포로 돌아가게 합니다. 영원을 갈망하지만 그 시작부터 사형 선고를 받은 비극적 존재, 인간의 이러한 모순을 해결할 수 있는 분은 생명의 주인이신 하느님 밖에 없습니다.

-발타사르, 죽음의 신비를 묵상하다.

 

여전히 아버지의 죽음이 현실로 여겨지지 않는다. 남도의 머나먼 고향집에서 어머니와 함께 조용히 지내고 있는 것 같다. 또한 마지막으로 머무셨던 천안의 어느 한 요양원 침대에서 누워계시는 것만 같다. 어느 신부님께서 말씀하셨다. 돌아가신 부모님은, 멀리 어딘가에 계시는 것이라고. 나에게 있어 고인이 되신 아버지도 그렇다. 보지도 듣지도 만지지도 못하지만 아버지는 하늘나라에서 잘 지내고 계실 것이다. 

 

무엇보다 죽음에 대한 의문을 풀 해결책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있습니다.

-발타사르, 죽음의 신비를 묵상하다.

 

"죽음이란 무엇인가. 인간에게 가장 큰 일은 '죽음'이다. 나의 죽음과 너의 죽음. 사랑하는 이의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 나의 죽음을 어떻게 맞이해야 할 것인가? "-발타사르, 죽음의 신비를 묵상하다.

 

"예수님은 죽기 위해 태어나셨다."-발타사르, 죽음의 신비를 묵상하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의 죽음을 통해 세계사에서 가장 결정적인 형상이 되셨다. 이에 대한 대답은 다음 문자으로 집약될 수 있다. 지상에서 예수님의 모든 활동은 처음부터 천상에 계신 아버지를 향한 완전한 '자기양도'였다. 이러한 양도는 십자가에서 정점에 이르며 가장 완전한 효과를 발휘한다.

-발타사르, 죽음의 신비를 묵상하다

 

만일 우리가 죽음에 직면해서 두려워 떤다면, 그것은 예수님의 죽음이 지닌 가치를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에 앞서 죽음의 의미를 바꾸기 위해 친히 죽음을 끌어안으신 주님을 잊지 말아야한다.

-발타사르, 죽음의 신비를 묵상하다

 

아버지의 장례를 치루며 그리고 오늘까지 아버지가 나를 지켜보고 함께 하신다는 믿음이 생겼다. 아버지는' 삶의 장소를 이승에서 저승으로 옮기신 것 뿐'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은 영적인 존재이며 '영이 육체를 경험하려 세상에 났다'는 말을 어디선가 읽었다. 죽음이라는 현상은 사랑하는 이와의 헤어지게 만들고 이승의 우리는 무척 슬프고 고통스럽다. 하지만 영원한 생명을 믿는 이들에게 죽음은 더 이상 고통이 아니며 새로운 생명을 얻는 방법이다.

 

죽음은 하느님께서 최고의 자유로운 방식으로, 지나간 삶의 공로나 허물을 없애지 않은 채 죽은 이에게 생명을 불어넣으시는 순간이다. 

-발타사르, 죽음의 신비를 묵상하다

 

그리스도의 지상 생애는 보편적인 가치를 갖는 죽음을 향한다. 그분께서 선사하시는 영원한 생명은 이 죽음에서 출발하여 성체를 통해 드러난다.

-발타사르, 죽음의 신비를 묵상하다

 

아버지가 하늘나라에 가신 후에 난 하느님 대신 '아버지'를 부르며 기도를 했다.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할 때나 바라는 점이 생겼을 때, "마태오 아버지, 저를 위해 기도해 주세요. 저를 위해 빌어주세요."라고 기도했다. 이렇게 기도하면 생전(生前)에도 나를 그토록 사랑하셨던 아버지가 내 머리 하늘 위에서 바로 내 기도를 들으시고 날 지켜주시는 느낌을 받았다. 

 

지상 교회가 성찬례를 거행할 때, 성찬 기도에서 천상 교회를 부르지만, 지상의 교회는 천상 성인들의 보호를 기념하기 위해 더욱 천상 교회를 상기한다.

-발타사르, 죽음의 신비를 묵상하다 

 

죽을 운명으로 조거너 지어진 이 지상에서 자신만을 위해 살아가던 존재는 저 천상에서 진정 자기 존재를 인격적이며 삼위일체적인 차원에서 자신으로부터 벗어나 다른 이를 위해 살아가는 '위타적 존재'가 된다.

-발타사르, 죽음의 신비를 묵상하다

 

양업고등학교 초대교장선생님이셨던 윤병훈 베드로 신부님께서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주님, 베드로 신부님의 영원한 안식을 기도합니다. 영원한 빛을 그에게 비추소서. 신부님께서 천국에서 하느님을 뵈옵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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